연중 제15주일 (02/7/14) (이사 55,10-11; 로마 8,18-23; 마태 13,1-23) 전파견문록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지요. 이 프로그램은 어떤 단어를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이들이 설명하고 어른들이 그 단어를 맞추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린이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해야지만 맞출 수 있는 문제들이죠. 여기서 한 어린이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이건 작지만 그 안에 들어있을 건 다 있어요." 한 번 생각해보시죠. 답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 예, 답은 바로 <씨앗>입니다. 이 문제를 낸 어린이는 씨앗이 자라서 커다란 식물이 된다는 걸 상당히 철학적으로 풀어낸 것 같아요. 그 아이의 설명대로 작게 보이는 씨앗 안에는 놀라운 섭리가 담겨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물론 이 속담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도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상황이 굉장히 안좋지만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굳센 의지의 한 마디는 상황을 호전시키고도 남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할 거라는 히딩크의 말이 실현된 것처럼 말이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씨앗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 말씀의 효과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어린이의 설명처럼 밭에 뿌려진 씨앗이 자라서 열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던져진 하느님의 말씀은 보잘 것 없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놀라운 힘을 가진 게 사실이죠. 실제로 2천년 전 중동의 조그만 지역에서 시작된 복음 선포는, 지금 십 수억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전혀 의외의 상황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씨앗이 싹을 틔워 열매를 맺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나라의 농경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파종할 때 좋은 씨를 골라 거름이 듬뿍 들어간 땅에 심습니다. 게다가 하나하나의 씨앗이 다른 씨앗에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두지요. 하지만 예수님 시대의 파종 방법은 이와 크게 달랐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중동 지방의 농부들은 잘 일구지도 않은 땅에 그냥 씨를 마구 뿌려댔습니다. 마치 자랄 놈은 자라고 죽을 놈은 죽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낭비가 심한 파종법인 것이죠. 아무튼 뙤약볕을 피하고 거름진 땅에 떨어진 씨앗은 잘 자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길에 떨어지거나 나쁜 땅에 떨어진 씨앗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같이 여러 가지 운명에 처한 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씨앗이 떨어진 땅은 우리들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바닥은 하느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마음인 것이고,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은 하느님 말씀을 듣기는 하나 시련과 유혹이 다가오면 바로 그 말씀에서 돌아서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적당히 그늘지고 기름진 땅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깊이 새겨 항상 하느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그런 마음이지요. 여러분은 과연 어떤 땅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차피 말에 대한 복음 말씀이 나왔으니 말에 대해서 더 얘기해보도록 하지요. 말, 즉 언어는 의사 소통에 있어 매우 인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수단입니다. 인간 정신의 움직임을 잘 표현하고 있고, 또 그만큼 복잡합니다. 동물들 세계 어디에서도 인간만큼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동물이 없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 말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말은 정말 유용한 수단이지만 결코 완벽한 수단은 아닙니다. 내가 입밖에 내뱉은 말이 내 인격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판단하려 하지요. 또 하나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인격의 전부를 담을 수는 없지만 내뱉은 말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느냐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짐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죠. 우린 수많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얼토당토 않는 입바른 공약만 내세운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각종 비리로 연루된 사람들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 내미는 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써 스스로의 인격을 깎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말은 좋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불완전한 수단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하지요. 그 말의 진위를 떠나서 말은 대단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남 말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주로 비방하기를 좋아합니다. 만약 내가 욕하는 걸 상대가 들었다고 합시다. 더구나 여기에 오해라는 마귀가 첨가되었다고 합시다. 그와 나와의 관계는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철천지 원수가 됩니다. 오해가 풀려도 다시 예전처럼 관계가 회복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또 하나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이 욕하던 사람과 닮아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말은 허공에 던져졌지만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맙니다. 물론 말이 부정적인 특징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난 할 수 있다, 난 잘 한다, 난 이루어내고 말 것이다"라는 말은 불가능해보이던 일마저 가능하게 만듭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 암시'라고 표현하죠. 희망적인 메시지는 타인에게까지 전파되어 그에게 에너지를 주고 그마저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말의 긍정적인 효과가 좀 적은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말씀은 희망적인 메시지의 정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열망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긍정적으로 발전해왔고 또 발전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발전의 중심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마음의 텃밭에 돌도 많고 잡초도 많을 것입니다. 성인이 아닌 이상, 우린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밭에 나와 돌도 고르고 잡초도 뽑아주어야 합니다. 어느날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잡초가 무성하고 돌이 마구 굴러다니는 황무지를 보여드릴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정성껏 가꾼 텃밭에 하느님 말씀을 뿌리십시오. 잘 자라지 않는 것 같으면 나와서 물도 좀 주십시오. 싹이 트면 차양막도 덮어주고 묘목 가지가 약하면 지지대도 세워주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샌가 내 마음의 텃밭에 탐스런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드높이 자라있을 것입니다. 그때 열매를 따다가 하느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표정을 찬찬히 관찰해보십시오. 그 안에 환히 웃는 여러분의 얼굴이 보일 것입니다.